진격의 거인 마지막 시즌을 한참 미뤄두고 있었다. 정확히는 결말이 욕을 너무 먹는다는 말 때문이었다. 커뮤니티만 들어가면 귀멸의 칼날 결말보다 못하다, 역대급으로 말아먹었다, 이거 보면 그동안 쌓인 게 다 무너진다는 글이 도배가 돼 있었으니까. 그래서 오히려 손이 안 갔다. 십 년 넘게 좋아하던 작품이 마지막에 무너지는 꼴을 직접 확인하는 게 두려웠다는 게 솔직한 마음이다. 그러다 며칠 날을 잡고 1기부터 완결편 후편까지 한 번에 정주행을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떨면서 봤는데 생각보다 훨씬 괜찮았다. 이 글은 그 정주행 직후에 남기는 솔직한 감상이다. 스포일러가 있으니 아직 안 본 분은 여기서 멈추시길 권한다.

정주행 전에 알아두면 좋은 제작 정보
진격의 거인은 이사야마 하지메가 별책소년 매거진에 2009년 9월부터 2021년 4월까지 연재한 작품이다. 약 11년 반 동안 이어졌고 단행본은 34권, 본편은 139화로 완결됐다. 누적 발행 부수는 1억 부를 넘긴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한 세대를 대표하는 일본 만화라고 불러도 과하지 않다. 애니메이션은 제작사가 중간에 한 번 바뀐다. 1기부터 3기까지는 WIT STUDIO가 만들었고, The Final Season으로 불리는 마지막 시즌부터는 MAPPA가 이어받았다. 이 마지막 시즌도 한 번에 나온 게 아니라, Part 1이 2020년 말, Part 2가 2022년 초, 그리고 완결편이 전편과 후편으로 쪼개져 2023년에 차례로 공개됐다. 무려 10년에 걸쳐 애니가 완결된 셈이라, 처음 1기를 보던 학생이 직장인이 되어 마지막을 본다는 농담이 그냥 농담만은 아니었다.

마지막 시즌을 계속 미뤄둔 이유
제작사가 바뀌면서 그림체와 연출 톤이 달라진 것에 대한 호불호도 컸던 걸로 기억한다. 나도 처음 The Final Season 초반을 봤을 때는 3D를 섞은 거인 연출이나 가라앉은 색감이 낯설어서 적응이 안 됐다. WIT STUDIO 특유의 날렵하고 통쾌한 입체기동장치 액션을 기억하고 있었으니 더 그랬다. 그런데 이번에 1기부터 쭉 몰아서 보니까 오히려 후반부 톤이 이야기의 무게랑 잘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밝고 통쾌하던 초반과 달리, 후반은 누구도 깨끗하게 옳지 않은 진흙탕 싸움이라 화면이 어둡고 갑갑한 게 오히려 맞는 옷이었다. 적이 명확하던 벽 안의 이야기에서, 적과 아군의 경계가 무너지는 벽 밖의 이야기로 넘어가는 그 전환을 색감으로 보여준다고 느꼈다.
1기부터 다시 보니 보이던 떡밥들
몰아서 보면서 가장 좋았던 건 떡밥 회수였다. 1기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대사나 장면들이 후반부 전개의 복선이었다는 걸 한 번에 확인하니까 소름이 돋았다. 이 작품은 원래도 떡밥 푸는 솜씨가 좋기로 유명한데, 정주행으로 보면 그 쾌감이 두 배가 된다. 띄엄띄엄 챙겨 보던 시절에는 그냥 충격적인 반전으로만 소비했던 장면들이, 사실은 처음부터 설계돼 있던 그림의 일부였다는 걸 알게 되는 재미가 크다. 1기 오프닝 가사 하나, 초반에 스쳐 간 지하실 이야기 하나가 전부 마지막을 향한 화살표였다는 게 정주행에서야 비로소 보였다. 만약 결말 평가 때문에 망설이는 분이 있다면, 차라리 나처럼 1기부터 한 번에 보는 걸 추천한다. 중간에 끊고 보면 분노가 쌓일 자리에, 몰아 보면 납득이 들어찬다.
문제의 결말, 직접 보니 어땠나
가장 말이 많았던 후편 결말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솔직히 나도 사람들이 하도 쫄게 만들어 놔서 잔뜩 긴장하고 봤다. 그런데 막상 보니 쉴 틈 없이 재밌었다. 특히 수미상관 연출이 진짜 뽕이 찼다. 시작과 끝이 맞물리는 구조를 이렇게까지 의도적으로 끌고 가는구나 싶었다. 아르민이 지크를 설득하는 장면은 이 작품이 끝까지 무슨 이야기를 하려던 건지가 응축된 부분이라 감탄하면서 봤다. 산다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질문에, 거창한 사명이 아니라 사소한 일상의 장면들로 답하는 그 흐름이 좋았다. 리바이가 과거에 엘빈 대신 아르민을 살린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대목도 마찬가지다. 그 한마디에 그동안 리바이가 짊어진 무게가 다 담겨 있어서 멋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미카사가 울고 있는데 새가 날아와 머플러를 둘러주고 가는 연출. 아리가또 하면서 엔딩곡이 흘러나오는 장면에서는 여운 때문에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욕먹는다던 결말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음악이 절반은 했다
진격의 거인을 이야기하면서 음악을 빼면 섭섭하다. 시리즈 전반의 음악은 사와노 히로유키가 맡았는데, 이 사람 특유의 웅장하고 비장한 사운드가 작품의 절망적인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데 큰 몫을 했다. 1기 첫 오프닝이었던 홍련의 화살을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또렷하다. 거인이 벽 너머로 모습을 드러내는 그 도입부에 깔리던 합창과 현악이 없었다면, 같은 장면도 절반의 충격밖에 못 줬을 거라고 본다. 정주행을 하면서 새삼 느낀 건, 명장면이라고 부르는 순간들에는 거의 예외 없이 음악이 정확한 타이밍에 들어와 있다는 점이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가사 있는 삽입곡들이 인물의 독백과 겹쳐지는 연출이 늘어나는데, 그게 작품의 정서를 끌고 가는 또 하나의 축이었다. 액션의 쾌감이 입체기동장치에 있었다면, 정서의 무게는 음악에 있었다.
원작 만화와 다른 점, 그리고 호불호
원작 만화를 본 사람들 사이에서도 결말 해석은 갈린다고 들었다. 애니는 후일담 분량을 일부 더 붙여서 여운을 길게 가져가는 쪽을 택했는데, 나는 이 선택이 영상 매체에는 맞았다고 본다. 마지막 장면까지 보고 나면 이 작품이 결국 자유라는 단어를 어떻게 비틀어 보여주려 했는지가 비로소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물론 에렌의 마지막 동기나 그 집착을 두고는 보는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온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허무하다고 느낄 것이고, 누군가는 그게 이 작품다운 결말이라고 볼 것이다. 다만 적어도 커뮤니티에서 말하던 것처럼 역대급으로 말아먹은 쓰레기 결말은 절대 아니었다. 적어도 평타 이상, 내 기준으로는 충분히 잘 마무리한 축에 든다.
그래서 정주행할 가치가 있나
결론은 분명하다. 결말 평가에 겁먹고 미뤄둔 사람이라면 그냥 보길 권한다. 인터넷 평가는 가장 화가 난 사람들의 목소리가 제일 크게 들리는 법이라, 직접 보기 전까지는 실제 작품의 만듦새를 알 수 없다. 나도 그 목소리에 끌려다니다 한참을 미뤘지만, 막상 정주행을 마치고 나서는 미리 안 본 게 아까울 정도였다. 적어도 마지막 시즌의 연출과 음악, 떡밥 회수의 쾌감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10년을 따라온 작품을 끝까지 지켜보는 것, 그게 오래 따라온 팬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보상이라는 걸 이번에 다시 느꼈다. 혹시 같은 이유로 망설이고 있다면, 이 글이 마지막 버튼을 누르게 만드는 작은 등 떠밀기가 되었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