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넷플릭스에서 뭐 볼까 한참 뒤적이다가 플루토를 틀었다. 한 편이 60분이 넘는데, 1화 보고 바로 2화를 눌렀고 결국 이틀 만에 여덟 편을 다 봤다. 다 보고 나서는 만화책 전 여덟 권을 따로 사서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같은 이야기를 두 번 본 셈인데 하나도 안 지루했다.
먼저 결론부터 말하면, 로봇이 나오는 SF인데 정작 제일 오래 생각하게 되는 건 사람 마음이다. 미움이라는 감정이 어디서 오고 어디까지 사람을 끌고 가는지를, 우라사와 나오키는 추리극의 외피를 씌워서 보여준다. 나는 거대 로봇끼리 치고받는 액션을 기대하고 봤다가 마지막엔 조용히 가라앉는 쪽이었다. 이게 그런 작품이다.

로봇이 로봇을 죽이는 형사물로 시작한다
이야기는 스위스의 산악 로봇 몽블랑이 처참하게 부서진 채 발견되는 데서 출발한다. 산불을 끄고 길 잃은 등산객을 찾던, 누구한테나 사랑받던 로봇이다. 그 죽음을 맡은 게 유로폴 소속 형사 로봇 게지히트다.
초반 몇 권은 거의 정통 형사물처럼 굴러간다. 게지히트가 사건 현장을 돌고, 증인을 만나고, 알리바이를 따진다. 그런데 단서가 모일수록 이상해진다. 로봇이 로봇을 죽인 정황이 나오는데, 이건 로봇 법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거든. 사람을 해치지 못하게 만들어진 존재가 같은 존재를 부순다는 게 이 세계에선 거의 종교적 금기에 가깝다.
나는 이 도입부가 마음에 들었다. 거창한 설정 설명으로 시작하지 않고, 형사가 한 명씩 사람을 만나러 다니는 걸음으로 세계를 보여준다. 로봇이 차를 마시는 시늉을 하고, 가족이 있고, 거짓말도 한다는 걸 대사 한두 줄로 툭툭 흘린다. 그 사소한 장면들이 쌓여서 나중에 묵직하게 돌아온다. 처음엔 그냥 분위기용 디테일인 줄 알았는데, 마지막 권까지 읽고 나니 하나도 버릴 게 없었다.
분위기를 잡는 솜씨도 좋다. 비 오는 도시, 흐린 하늘, 사람 없는 새벽 거리 같은 배경이 자주 나오는데, 그게 사건의 무게랑 잘 맞는다. 게지히트가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현장으로 걸어가는 장면 하나만 봐도 이 작품의 톤이 어떤지 바로 감이 온다.
뜸 들이는 전개를 답답해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나도 1화 초반엔 너무 잔잔한가 싶었거든. 근데 3화쯤 가면 이 느린 호흡이 다 계산된 거였다는 게 보인다. 빨리 가려고 만든 이야기가 아니라, 천천히 정들게 만든 다음에 그걸 하나씩 부수려고 만든 이야기다.
표적이 된 일곱 로봇, 각자의 사연
이 작품의 중심에는 세계 최고로 꼽히는 로봇 일곱이 있다. 몽블랑, 노스 2호, 브란도, 헤라클레스, 엡실론, 그리고 게지히트와 아톰. 누군가 이들을 하나씩 노리고 있고, 게지히트는 자기도 그 명단에 들어 있다는 걸 알면서 수사를 이어간다.
좋았던 건 이 일곱이 그냥 강한 병기로 소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노스 2호는 전쟁에서 수많은 적을 부순 살상 병기였는데, 은퇴하고 나서는 시각 장애가 있는 늙은 작곡가의 집사로 산다.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 하는 로봇의 이야기가 한 권을 거의 통째로 채우는데, 나는 여기서 처음으로 책을 덮고 한참 멍하니 있었다. 손에 무기를 달고 살던 존재가 그 손으로 건반을 더듬는 장면이라니.
브란도는 터키의 국민 격투 챔피언인데, 링 밖에선 애들이 바글바글한 평범한 아빠다. 헤라클레스와는 라이벌이면서 둘도 없는 친구고. 둘이 경기 전에 주고받는 시시한 농담이 좋았다. 곧 무슨 일이 닥칠지 아는 독자 입장에선 그 평범함이 더 마음에 걸린다.
엡실론은 전쟁 참전을 거부한 평화주의자라 비겁자 소리를 듣지만,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모아 키운다. 강한데 싸우지 않기로 한 존재를 이렇게 그려 놓으니, 힘이 세다는 게 무슨 뜻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한 명 한 명한테 삶을 붙여 놓아서, 그가 부서질 때마다 부품이 아니라 한 사람이 죽는 것처럼 읽힌다.
아톰은 좀 특별하다. 데즈카 오사무의 원작에서 주인공이던 존재라, 우라사와도 함부로 다루지 않는다. 어린아이의 모습인데 누구보다 사람의 마음을 잘 읽는 로봇으로 나오고, 게지히트의 수사와 아톰의 시선이 후반에 겹치면서 이야기가 한 단계 더 깊어진다. 아톰한테는 우란이라는 여동생 로봇이 있는데, 남의 감정을 냄새처럼 맡는 아이다. 우란이 길에서 어떤 슬픔을 느끼고 멈춰 서는 장면은 짧은데도 오래 기억에 남았다.
게지히트도 마찬가지다. 형사 로봇인데 집에 가면 아내가 있다. 둘이 휴가지를 고르고 여행을 계획하는, 어느 부부나 할 법한 대화를 나눈다. 로봇 부부가 식탁에 앉아 다음 여행 얘기를 하는 칸을 보고 있으면, 이게 SF라는 걸 자꾸 잊게 된다. 그 평범한 일상이 있어서 뒤에 닥치는 일이 더 아프게 읽힌다.
모든 길은 전쟁으로 통한다
수사를 따라가다 보면 사건의 뿌리에 제39차 중앙아시아 분쟁이 있다. 페르시아 왕국에 대량살상 로봇이 숨겨져 있다는 의심으로 시작된 전쟁인데, 막상 들어가 보니 그런 건 없었다는 식으로 흘러간다. 어디서 많이 본 구도라 읽다가 멈칫했다. 우라사와는 굳이 현실의 어떤 전쟁이라고 못 박지 않는데, 안 박아도 다 알아본다.
표적이 된 로봇들은 거의 다 이 전쟁에 동원됐던 존재들이다. 명령을 받아 남의 나라를 부쉈고, 그 과정에서 자기 안에 설명 못 할 응어리를 안고 돌아왔다.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라, 누구도 깨끗하게 옳거나 그르지 않다. 미움이 미움을 부르고, 그 끝에서 다들 비슷하게 망가진다. 복수를 하는 쪽도 당하는 쪽도 똑같이 불행해지는 구조라, 읽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게지히트한테도 지워진 기억이 있다. 로봇은 괴로운 기억을 삭제할 수 있다는 설정이 나오는데, 이게 전쟁이라는 주제랑 맞물리면서 묵직해진다. 잊어야 버틸 수 있지만, 잊는다고 없던 일이 되진 않으니까. 이 부분을 읽을 땐 SF라기보다 외상을 안고 사는 사람 얘기를 듣는 기분이었다. 나는 군대 다녀온 친구들이 가끔 하던 말이 떠올라서 한참 그 장면을 다시 봤다.
증오라는 감정을 이렇게까지 정면으로 다루는 만화는 흔치 않다. 보통은 악당 하나 잡으면 끝나는데, 플루토는 미움 자체를 범인으로 놓는다. 누구를 미워해서 시작된 일이 아무도 행복하게 끝내 주지 않는다는 걸, 일곱 로봇의 죽음을 하나씩 쌓아서 증명한다.
제목이기도 한 플루토는 표적들을 차례로 쓰러뜨리는 거대한 로봇이다. 처음엔 그냥 강력한 자객처럼 보이는데, 그 정체와 왜 이런 일을 벌이는지가 후반에 드러나면서 이야기가 완전히 다른 색이 된다. 결말을 적진 않겠지만, 나는 마지막 권을 덮으면서 이 작품에 단순한 악당은 한 명도 없었다는 걸 알았다. 다들 어떤 슬픔에서 출발한 사람들이고, 슬픔이 미움으로 굳는 과정을 우라사와는 끝까지 차분하게 따라간다.

데즈카 원작과의 거리
플루토는 맨바닥에서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데즈카 오사무가 1952년부터 1968년까지 이어 그린 우주소년 아톰의 한 에피소드, 그중 1964년에 발표한 지상 최강의 로봇 편이 원작이다. 나는 순서가 거꾸로라 우라사와판을 먼저 보고 나중에 원작을 찾아 읽었는데,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원작 쪽 로봇들은 훨씬 순박하다. 누가 더 센지 겨루는 토너먼트 같은 골격이고, 선악도 비교적 또렷하다. 우라사와는 2003년부터 2009년까지 이 짧은 에피소드를 형사 게지히트를 화자로 끌어와서 완전히 어른용 미스터리로 다시 짰다. 같은 캐릭터인데 사연이 몇 배로 두꺼워졌고, 죽음 하나하나가 무게를 갖는다. 원작에서 한두 칸으로 스쳐 가던 로봇한테 한 권짜리 인생을 새로 붙여 준 셈이다.
그렇다고 원작을 깔보지 않는다는 게 보기 좋았다. 데즈카가 던졌던 질문, 그러니까 로봇도 마음이 있느냐, 사람과 로봇의 경계가 어디냐 하는 물음을 그대로 받아서 더 깊이 판다. 옛날 만화의 골격을 빌리되 안에 든 내용은 지금 시대의 고민으로 채운 거다. 오마주라는 말이 이럴 때 쓰는 거구나 싶었다. 원작을 모르고 봐도 충분히 좋지만, 알고 보면 한 겹이 더 보인다.
로봇이 꿈을 꾼다는 것
이 작품이 계속 붙잡고 늘어지는 질문이 하나 있다. 로봇이 마음을 가질 수 있느냐는 거다. 작중 로봇들은 사람과 거의 구분이 안 갈 만큼 발전했는데, 그래도 사람들은 로봇은 거짓말을 못 한다거나 꿈을 못 꾼다고 믿는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 믿음에 금이 간다.
악몽을 꾸는 로봇이 나오고, 슬픔을 못 견뎌 멈춰 버리는 로봇이 나온다. 아톰을 만든 텐마 박사는 완벽한 로봇을 만들려고 일부러 한쪽으로 치우친 감정을 집어넣는 실험까지 한다. 미움이나 슬픔 같은 어두운 감정이 있어야 사람에 가까워진다는 발상인데, 읽으면서 좀 서늘했다. 우리가 사람다움이라고 부르는 게 그런 거였나 싶어서. 착하고 밝은 감정만으로는 사람이 안 된다는 얘기처럼 들려서 한참 곱씹었다.
나는 평소에 인공지능 얘기가 나오면 막연히 무섭다고만 생각했는데, 이 만화는 그 무서움의 방향을 좀 틀어 줬다. 진짜 무서운 건 로봇이 감정을 갖는 게 아니라, 사람이 로봇한테 미움을 가르치는 쪽이더라. 십 년도 더 전에 나온 이야기인데 지금 봐도 하나도 낡지 않았다.
넷플릭스 애니와 만화책, 둘 다 보길 잘했다
넷플릭스판은 2023년에 여덟 편으로 나왔다. 한 편이 60분을 넘겨서 호흡이 느긋한데, 나는 그게 이 작품엔 맞다고 본다. 빠르게 몰아치는 액션물이 아니라 인물의 표정과 침묵으로 끌고 가는 이야기라, 시간을 들여 보여줄수록 살아난다.
애니로 먼저 보면 목소리와 음악 덕에 감정이 더 직접 들어온다. 노스 2호 편의 피아노 장면 같은 건 소리가 있으니 확실히 세더라. 화면을 꽉 채우는 작화도 좋았고, 로봇들 디자인이 위압적이지 않고 어딘가 쓸쓸해 보이게 잡힌 게 인상적이었다.
대신 만화책으로 보면 우라사와 특유의 빽빽한 칸 구성과 인물 얼굴의 미세한 변화가 눈에 들어온다. 같은 장면도 종이로 보면 한 칸 한 칸 천천히 곱씹게 된다. 나는 애니에서 빠르게 지나간 장면을 만화책에서 다시 만나면 손이 저절로 멈추더라. 특히 인물 눈빛 하나로 감정을 다 말하는 칸들이 그랬다.
한 가지 일러두면, 애니는 원작 만화의 칸 구성을 꽤 충실하게 옮긴 편이다. 그래서 만화책을 먼저 본 사람은 어떤 장면이 어떻게 움직일지 기대하며 보는 재미가 있고, 애니를 먼저 본 사람은 종이에서 그 장면이 한 칸으로 멈춰 있는 걸 보며 또 다른 인상을 받는다. 나는 노스 2호의 손동작이나 게지히트가 비를 맞으며 걷는 장면이 두 매체에서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는 게 제일 좋았다.
둘 중 하나만 고르라면 입문은 애니를 권하고 싶다. 진입이 부드럽거든. 그러고도 더 알고 싶어지면 그때 만화책 여덟 권으로 넘어가면 된다. 나처럼 둘 다 봐도 시간 아깝다는 생각은 안 들 거다. 오히려 같은 장면을 두 매체로 보는 맛이 따로 있었다.
정주행하고 남은 생각
다 보고 나서 제일 오래 떠오른 건 거대 로봇들의 싸움 장면이 아니었다. 노스 2호가 서툴게 피아노를 더듬던 손, 브란도가 아이들 사진을 보며 짓던 표정, 그런 조용한 칸들이었다. 강한 존재를 잔뜩 그려 놓고 정작 그 강함이 아무것도 지켜 주지 못한다는 걸 보여주는 이야기라, 다 읽고 나면 마음이 한동안 무겁다.
미움으로 시작된 일은 미움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걸, 이 만화는 누구를 가르치려 들지 않으면서 천천히 납득시킨다. 로봇 SF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사실은 전쟁과 용서에 관한 이야기다. 그래서 SF를 평소에 안 보는 사람한테도 권할 수 있다.
평소에 만화책을 잘 안 사는 편인데 이번엔 여덟 권을 한 번에 질렀고, 후회는 없다. 책장에 꽂아 두고 가끔 노스 2호 편만 다시 펼쳐 본다.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던 그 로봇이 자꾸 생각나서. 명작이라는 말을 아껴 쓰는 편인데, 이 작품한테는 그냥 붙여 주고 싶다.
여름에 길고 묵직한 작품 하나 붙잡고 싶은 사람한테 권한다. 화려한 액션을 기대하면 조금 심심할 수 있지만, 끝까지 보고 나면 그 잔잔함이 다 이유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나는 다음 주에 데즈카 원작 단행본을 한 번 더 천천히 읽어 볼 생각이다. 우라사와가 어디를 어떻게 비틀었는지, 이번엔 원작 쪽에 줄을 그어 가며 보고 싶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