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어반자카파 2026. 7. 13. 23:41

유튜브 알고리즘이 며칠째 만화 리뷰 하나를 자꾸 띄워줬다. 궁금해서 타코피의 원죄 단행본을 상하권 두 권으로 샀고, 그날 밤에 앉은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먼저 점수부터 말하면 내 개인 점수는 10점 만점에 9점이다. 짧은데 세고, 센데도 마지막엔 이상하게 다정했다.

밝혀둘 게 있다. 이 글에는 결말까지 다루는 강한 스포일러가 있다. 아직 안 봤다면 여기서 멈추고 원작부터 읽는 게 낫다.

작가는 타이잔5다. 2020년 점프 루키에 단편 찬가를 올리며 이름을 알린 작가다. 이 만화는 소년 점프 플러스에서 2021년 12월 10일부터 2022년 3월 25일까지 연재됐고, 총 16화로 완결됐다. 단행본은 상권이 2022년 3월 4일, 하권이 4월 4일에 나온 전 2권이 전부다. 석 달 반짜리 단기 연재인데, 분량이 이렇게 짧다는 게 다 읽고 나면 오히려 서늘하다. 덜어낼 데가 없다. 요즘 다시 화제가 된 건 2025년 6월 넷플릭스를 비롯한 여러 플랫폼에서 애니메이션이 풀렸기 때문인데, 제작사 ENISHIYA의 첫 원청 장편이라고 한다. 나는 원작을 먼저 만난 쪽이라 이 글도 만화 기준으로 적는다.

밤하늘 아래 작은 문어 모양 생물의 실루엣
순수함이 낯선 세계에 떨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해피별에서 온 문어와 열 살 시즈카

타코피는 대체 뭐 하는 외계인일까. 답부터 적으면, 해피별에서 지구로 온 문어 모양 생명체다. 온 시점은 2016년. 임무는 딱 하나, 지구인을 웃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가방에서 온갖 해피 도구를 꺼내 든다. 나쁜 마음이라곤 한 톨도 없다. 문제는 그 순수가 지구의 규칙을 하나도 모른다는 점이다.

타코피를 위기에서 구해준 건 초등학교 4학년, 열 살짜리 시즈카였다. 은혜를 갚겠다며 타코피는 시즈카를 웃기려 든다. 그런데 시즈카는 좀처럼 웃지 않는다. 왜 웃지 못했을까. 반에서 심하게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고, 집에 돌아가도 기댈 어른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곁을 지켜주던 강아지마저 사라진 참이었다.

여기서 이 만화의 화법이 드러난다. 타코피의 시선은 밝고 동글동글한데, 그 눈에 비친 세상은 이미 지옥이다. 귀여운 그림체와 내용의 낙차가 커서, 나는 1화를 넘길 때부터 불안했다. 아, 이거 그냥 힐링 만화가 아니구나 싶더라.

타코피가 꺼내는 도구도 하나씩 뜯어보면 무섭다. 시간을 되감고, 모습을 바꾸고, 상대의 마음을 읽는 물건들이다. 만능에 가까운 이 도구들이 세상 물정 모르는 손에 쥐어지니까, 좋게 쓰려는 매 순간이 다음 사고의 씨앗이 된다. 웃게 해주겠다는 목표 하나만 붙들고 앞뒤를 못 재는 것이다. 나는 타코피가 도구를 꺼낼 때마다 조마조마했는데, 그 조마조마함이 이 만화를 끝까지 붙잡고 읽게 만든 힘이기도 했다.

순수가 힘이 세면, 그 순수는 가끔 가장 위험한 도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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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사라진 세 아이의 집

주역은 셋이다. 시즈카, 마리나, 나오키. 이 셋의 집을 하나씩 들여다보는 게 만화의 뼈대인데, 어느 집도 성한 데가 없다. 읽는 내내 나는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에게 화가 났다.

시즈카의 엄마는 딸을 방치하다시피 한다. 마리나의 집은 겉보기엔 멀쩡한데 안으로 곪아 있고, 나오키의 집도 사정이 복잡하다. 세 아이 모두 학교와 집 어느 쪽에서도 안전하지 않다. 그러니 아이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방식으로만 관계를 맺는다. 따돌린 아이가 다른 곳에선 따돌림을 당하고, 그 화풀이가 또 약한 쪽으로 흐른다.

내가 이 셋을 쉽게 미워하지 못한 이유는 이렇게 정리된다.

  • 시즈카는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집에서 버려진 아이였다.
  • 마리나의 못된 행동 뒤에는 자기도 어쩌지 못하는 가정사가 깔려 있었다.
  • 나오키는 그나마 착한 편인데, 착해서 더 이용당하고 더 다친다.

그럼 어른들은 벌을 받나. 거의 받지 않는다. 어른의 죄값을 아이들이 대신 치르는 구조가 이 만화의 진짜 원죄처럼 보였다. 제목의 원죄라는 단어가 종교적 상징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나오키의 쌍둥이 동생 준야 정도가 숨통이었는데, 다 읽고 나서 준야만 그나마 멀쩡했다고 중얼거린 게 기억난다.

이 대목에서 나는 예전에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을 봤을 때의 감각이 떠올랐다. 어른이 만들어 놓은 세계의 무게를 아이가 통째로 떠안는 그림 말이다. 타코피의 원죄는 그걸 훨씬 작고 사적인 스케일로, 놀이터와 교실 크기로 줄여서 보여준다.

해질 녘 빈 놀이터에 흔들리는 그네
아이들만 남겨진 집과 골목의 저녁은 유난히 길다.

순수가 저지른 일과 시즈카가 저지른 일

여기서부터가 이 만화가 정말 세지는 지점이다. 타코피는 시즈카를 웃기려고 해피 도구를 계속 쓴다. 그런데 시간을 되돌리고 상황을 바꾸는 그 도구들이, 순수한 손에 쥐어지니까 오히려 더 끔찍한 결과를 낳는다. 좋게 만들려는 시도마다 사태가 커진다. 선의가 브레이크 없이 굴러갈 때 얼마나 무서운지, 나는 이 만화에서 처음 실감했다.

마리나 쪽도 만만치 않다. 시즈카를 괴롭히는 위치에 있던 아이인데, 그 애 역시 집에서는 억눌린 쪽이었다. 강한 척하지만 실은 자기 자리가 불안해서 더 모질게 구는 아이라, 미워하려고 보면 어느새 딱해진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교실 안에서 계속 자리를 바꾼다. 누가 절대 악이고 누가 절대 선이라고 못 박는 순간, 이 만화는 그 선을 슬그머니 지워버린다. 그게 이 작품이 독하면서도 정직하다고 느낀 부분이다.

가장 충격이었던 건 시즈카였다. 순수한 피해자인 줄 알았던 아이가, 나오키와 타코피를 이용해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지른다. 자기를 버린 아버지를 향한 분노를 엉뚱한 대상에게 쏟는다. 타코피가 자기 말을 안 듣자 돌로 내리쳐 기절시키고 도구를 빼앗기까지 한다. 그 장면에서 나는 잠깐 책을 덮었다. 얘를 어떻게 봐야 하나 싶었다.

그럼 시즈카를 미워해야 하나. 그게 안 된다. 이 아이가 이렇게 되기까지 학교와 집이 한 짓을 앞에서 다 봤기 때문이다. 가해와 피해가 한 몸이라, 손가락질할 대상을 찾다 보면 결국 아무도 그냥 두지 못하는 자리로 끌려간다. 이런 윤리적 부담을 정면으로 안기는 작품은 흔치 않다. 강철의 연금술사 브라더후드처럼 죄와 대가를 길게 붙들고 늘어지는 작품을 좋아했다면, 이 짧은 만화의 밀도에 오히려 더 놀랄 것이다.

나쁜 어른은 벌을 받지 않고, 그 값은 늘 아이들이 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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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게 끝났다는 결말, 그래도 내가 좋았던 이유

결말은 호불호가 갈린다. 마지막에 타코피가 자신의 해피력을 전부 바쳐 망가진 상황을 되돌리고, 시즈카를 원래 자리로 돌려놓는다. 그리고 이야기는 비교적 밝게 닫힌다. 여기에 대해 해피엔딩이 급조됐다고 아쉬워하는 독자들이 꽤 있다. 그 앞의 지옥에 비해 봉합이 빠르다는 것이다.

나는 어느 쪽이었나. 나는 이 결말이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마지막에 타코피가 자기 행복을 전부 내주면서까지 시즈카를 되돌리려는 장면이 오래 마음에 걸렸다. 아무것도 모르던 순수가 처음으로 대가를 이해하고 스스로를 내주는 순간이라, 애잔했다. 상처의 크기에 비해 회복이 빠른 건 맞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까지 현실처럼 냉정하게 닫혔다면, 나는 아마 다시 못 폈을 것 같다. 작가가 마지막 한 뼘의 다정함을 남겨둔 선택이라고 읽었다.

다시 읽어도 후반의 봉합 속도는 눈에 걸린다. 그런데 두 번째로 넘겨보니, 급하게 닫힌 게 아니라 타코피라는 존재가 감당할 수 있는 최대치가 거기까지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능력이 아니라 마음의 한계였던 거다. 급하게 끝났다는 지적을 완전히 반박할 생각은 없다. 다만 16화라는 분량 안에서 이만큼의 밀도와 온도를 같이 잡은 것만으로도 나는 값을 다 했다고 본다. 넷플릭스로 무거운 애니를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짧고 정확한 이야기가 길고 늘어지는 이야기보다 오래 남는다. 예전에 넷플릭스에서 봤던 플루토도 그랬다. 러닝타임이 아니라 밀도가 여운을 정한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타코피의 원죄는 내 기대를 넉넉히 채운 명작이었다. 귀여운 표지에 속아 가볍게 집었다가 며칠을 곱씹었다. 순수한 문어 하나가 던진 질문이 계속 따라다닌다. 아무 잘못 없이 태어난 아이가 지옥 같은 환경에 놓였을 때, 그 아이가 저지른 잘못은 온전히 그 아이의 몫일까. 나는 아직 답을 못 정했다. 이 만화를 읽은 사람이라면 어느 쪽으로 기울었을지, 그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