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밤에 딱히 볼 게 없어서 너의 이름은을 또 틀었다. 극장에서 보고, 집에서 두어 번 더 보고, 이번이 4번째쯤 된다. 처음엔 예쁘고 슬픈 첫사랑 이야기 정도로만 봤는데, 볼 때마다 다른 데가 걸린다. 이번엔 몸이 바뀌는 그 설정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더라. 다 아는 내용인데도 끝까지 자리를 못 떴다.
신카이 마코토가 2016년에 내놓은 이 영화는 도쿄 소년 타치바나 타키와 시골 소녀 미야미즈 미츠하가 어느 날부터 자고 일어나면 서로 몸이 바뀌는 이야기다. 일본에서는 2016년 8월에 개봉해 그해 관객 동원 기록을 갈아치웠고, 국내에는 이듬해인 2017년 1월에 걸렸다. 나 같은 사람은 그 뒤로도 몇 년째 이 영화를 붙잡고 있다. 오늘은 다시 보면서 든 생각을 하나씩 적어본다.
간단한 기본 정보부터 짚고 가면 이렇다.
- 감독: 신카이 마코토 (1973년에 태어난 감독, 초속 5센티미터로 이름을 알림)
- 개봉: 일본 2016년 8월 26일, 한국 2017년 1월 4일
- 러닝타임: 약 106분
- 음악: 밴드 RADWIMPS, 대표곡 전전전세
- 두 주인공: 도쿄의 타치바나 타키, 이토모리의 미야미즈 미츠하
몸이 바뀌는 설정이 그냥 장난이 아니었다
솔직히 처음 봤을 땐 남녀가 몸이 바뀐다는 게 재밌자고 넣은 장치인 줄 알았다. 남자애가 여자애 몸으로 깨서 가슴부터 만져보고 당황하고, 여자애는 남자애 몸으로 도쿄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알바를 뛴다. 서로 몸을 함부로 쓰지 말라고 휴대폰 메모에 규칙을 적어 남기고, 그날 있었던 일을 일기처럼 주고받는다. 이런 소동극이 초반을 꽉 채운다.
두 사람은 서로 몸을 함부로 쓰지 말라며 규칙을 정한다. 여자 몸일 때 가슴 자꾸 만지지 말 것, 돈 함부로 쓰지 말 것, 그날 있었던 일 빠짐없이 적어둘 것. 이런 사소한 규칙들이 오히려 두 사람을 조금씩 가깝게 만든다. 미츠하가 타키 몸에 들어가서는 그가 짝사랑하던 오쿠데라 미키 선배와의 데이트 자리까지 잡아준다. 정작 미츠하 본인은 그 데이트가 은근히 신경 쓰이는 눈치고. 답답한 시골이 지긋지긋했던 미츠하가 잘생긴 남자로 태어나 도쿄를 누비게 해달라고 빌던 소원이, 이런 식으로 반쯤 이뤄지는 것도 재밌다. 그렇게 한참을 가볍게 흘러간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보다가 문득 다르게 읽혔다. 타키와 미츠하는 아무 접점이 없는 사람이다. 사는 곳도 멀고, 만날 일도 없고, 전생의 인연 같은 거창한 설정도 없다. 이토모리라는 시골 마을에 미츠하와 여동생 요츠하, 친구 사야카와 텟시가 산다고 한들, 도쿄에 사는 타키한테는 뉴스에서 스쳐 지나갈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우리가 지구 반대편에서 난 재해 소식을 듣고도 금방 잊는 것과 똑같다. 그런데 타키는 미츠하의 몸으로 그 마을을 직접 살아버린다. 할머니가 있고, 여동생이 있고, 친구들이 있는 곳. 몸이 바뀌었기 때문에 그 삶을 통째로 겪은 거다. 그 순간부터 이토모리는 타키한테 더 이상 남의 동네가 아니게 된다. 나는 이 지점이 이 영화의 진짜 출발선이라고 본다.

웃다가 갑자기 발밑이 꺼지는 순간
영화가 진짜 무서워지는 건 중반의 반전이다. 어느 날부터 미츠하와 연결이 뚝 끊기고, 타키가 그녀를 직접 만나러 이토모리로 찾아간다. 그런데 마을이 없다. 3년 전 티아마트라는 혜성의 조각이 떨어져 마을 절반이 사라졌고, 미츠하도 그때 세상을 떠난 사람이었다. 타키와 미츠하 사이에는 3년이라는 시차가 있었던 거다.
이 장면에서 등골이 서늘했다. 그동안 웃으면서 보던 몸 바꾸기 소동이, 실은 이미 죽은 사람과 이어져 있었다는 얘기가 되니까. 감독이 초반을 일부러 가볍게 깔아둔 이유가 여기 있다고 본다. 관객을 실컷 웃겨놓고 한순간에 발밑을 빼버리는 구성이다. 두 번째로 볼 때는 이 반전을 알고 봐서, 초반 소동극 장면들이 오히려 더 아리게 다가왔다.
여기서 앞의 몸 바뀌기 설정이 다시 무겁게 돌아온다. 타키한테 이토모리는 이제 남의 마을이 아니라 내 사람들이 살던 곳이다. 그러니 그는 마을을, 미츠하를 구하려고 필사적으로 매달린다. 만약 타키가 미츠하의 삶을 살아보지 않았다면, 그 재해는 그냥 3년 전 어느 시골에서 있었던 안타까운 사고로 끝났을 거다. 남의 일이 내 일이 되는 그 전환이, 이야기 전체를 밀고 나간다.
황혼시, 딱 한 번 마주 본 시간
내가 이 영화에서 제일 좋아하는 대목은 황혼 무렵의 장면이다. 극 중에서 카타와레도키라고 부르는, 낮도 밤도 아닌 그 짧은 시간. 미츠하의 할머니가 옛말로 알려주는 이 시간에, 산 위에서 3년의 시차를 건너 타키와 미츠하가 딱 한 번 서로를 마주 본다.
서로 이름을 손바닥에 적어주려다 해가 완전히 지면서 미츠하의 이름이 사라지는 장면은 몇 번을 봐도 마음이 조인다. 다 적지 못하고 흩어지는 그 이름이, 두 사람이 헤어진 뒤 서로를 잊어버리게 되는 걸 미리 보여주는 것 같다. 이어질 듯 이어지지 못하는 사랑이라는 점에서, 나는 예전에 읽고 오래 곱씹었던 적색 비가 감상이 떠오르기도 했다. 시대도 그림체도 전혀 다른데,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인연을 그린다는 점은 닮았더라.
무스비, 실이 이어지고 엉키고 다시 풀리고
미츠하의 할머니가 실 매듭을 짜면서 무스비 이야기를 해주는 장면이 있다. 실이 모여서 형태가 되고, 꼬이고 엉키고, 때로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지는 게 곧 시간이고 인연이라는 말이다. 짧게 지나가는 대사인데, 다시 보니 이 한마디가 영화 전체를 떠받치고 있었다.
몸이 바뀌는 것도, 3년의 시차도, 두 사람이 서로를 잊었다가 다시 찾는 것도 다 실이 엉켰다 풀리는 과정이다. 미츠하가 입으로 쌀을 씹어 만든 쿠치카미자케라는 술을 신사에 바치는 장면이나, 붉은 끈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츠하가 머리에 묶고, 나중에 타키가 손목에 차고 다니는 그 끈 말이다. 처음 볼 땐 그냥 예쁜 소품인 줄 알았는데, 감독이 이 붉은 실을 곳곳에 숨겨둔 게 이번에야 눈에 들어오더라. 미츠하가 바친 술을 타키가 마시고 다시 그녀와 연결되는 대목에 오니, 그 술 한 모금까지 무스비의 일부였구나 싶었다.

몇 년 뒤, 계단에서 스쳐 지나가는 두 사람
이 영화의 진짜 승부처는 엔딩이라고 생각한다. 재해를 막고 시간이 흐른 뒤, 타키와 미츠하는 서로의 이름도, 얼굴도 잊은 채 각자 어른이 되어 있다. 다만 뭔가 하나를 계속 찾고 있다는 느낌만 남아 있다. 누군가를, 무언가를 놓쳤다는 감각 말이다.
그러다 어느 날 도쿄에서 지하철을 타고 가다 창밖으로 서로를 스쳐 본다. 다음 역에서 내려 마주 오다가 결국 한 계단에서 엇갈려 지나치는데, 몇 걸음 가다 둘 다 참지 못하고 돌아선다. 그리고 거의 울먹이며 묻는다. 당신의 이름은. 여기서 영화가 끝난다.
나는 이 마지막 3분을 보려고 이 영화를 다시 트는 것 같기도 하다. 이름은 잊어도 마음에 걸린 감각은 안 지워진다는 것. 그게 이 영화가 하고 싶은 마지막 말이라고 느꼈다.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본 그 계단은 실제 도쿄에 있는 곳이라, 지금도 사람들이 찾아가 사진을 찍는다더라.
RADWIMPS가 없었다면 이 영화도 없다
이 영화 얘기를 하면서 음악을 빼면 섭섭하다. RADWIMPS가 만든 곡들이 장면마다 딱 붙어서, 노래가 시작되면 이야기가 한 단계씩 넘어간다. 오프닝을 여는 전전전세는 제목만 들어도 첫 장면이 떠오르고, 후반부 타키가 미츠하를 구하려 산길을 뛰는 장면에 깔리는 곡은 화면 없이 음악만 들어도 그 장면이 통째로 그려진다. 노래 가사와 대사가 겹치도록 짜놓은 대목도 여럿이라, 자막 없이 들어도 감정선이 따라온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신카이 마코토 영화는 그림이 반, 음악이 반이라고. 이 감독은 2007년 초속 5센티미터, 2013년 언어의 정원 때부터 하늘과 빛, 물 표현으로 유명했다. 배경 한 컷만 떼어놔도 사진 같다는 소리를 듣던 사람이다. 그런데 그 예쁜 하늘 밑에 RADWIMPS가 없었으면 너의 이름은이 이렇게까지 오래 회자되진 않았을 것 같다. 나도 개봉 무렵 한동안 이 영화 사운드트랙만 돌려 들었다. 노래만 들어도 그날 극장의 공기가 되살아나더라.

다시 보고 나서 든 생각
네 번째로 보고 나니, 이 영화가 단순한 로맨스가 아니라는 게 확실해졌다. 몸이 바뀌는 설정으로 감독이 하고 싶었던 말은 결국 이거였다고 나는 이해했다. 저 멀리 남의 일처럼 보이는 재해도, 그 안에 내가 아는 얼굴이 하나만 있으면 순식간에 내 일이 된다는 것. 그래서 이 영화는 첫사랑 이야기인 동시에, 우리가 지키지 못한 것들을 향한 조용한 추모처럼 보인다. 신카이 마코토가 이후 2019년 날씨의 아이, 2022년 스즈메의 문단속으로 재난을 계속 다룬 걸 보면 더 그렇다. 세 편을 나란히 놓고 보면 재난을 대하는 태도가 점점 또렷해지는 게 보인다.
일본 애니 극장판을 오래 따라온 사람으로서, 큰 재난과 상실을 조용히 껴안는 작품에는 늘 마음이 간다. 28년을 붙잡고 봤던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완주 후기도 그랬고, 로봇들이 서로의 죽음을 애도하던 플루토 정주행 후기도 그랬다. 욕먹는다는 소문에 떨면서 끝까지 봤던 진격의 거인 완결편 후기마저, 결국은 상실을 어떻게 견디느냐는 이야기였다.
너의 이름은도 그 계보에 있다고 본다. 겉은 예쁜 첫사랑 판타지인데, 속을 들여다보면 남의 아픔을 어떻게 내 것으로 끌어안느냐는 물음이 깔려 있다. 다음에 또 보게 되면 그때는 미츠하의 할머니가 짜던 실 매듭만 유심히 따라가 봐야겠다. 어디서 끊기고 어디서 다시 이어지는지, 이번엔 놓친 게 분명 있을 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