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밀린 청소를 하다가, 오래된 하드에서 옛날 애니 폴더를 하나 발견했다. 거기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39화가 통째로 들어 있더라. 초등학생 때 MBC에서 저녁마다 봤던 그 만화다. 나디아가 목에 걸고 다니던 파란 보석, 잠수함 노틸러스호, 그리고 매번 폭탄 안고 도망치던 그랜디스 일당까지. 그날 저녁을 그냥 통째로 반납하고 1화부터 다시 봤다. 어릴 적 본방을 빼면 이번이 3번째 정주행인데, 주말 이틀 동안 하루 6시간씩 붙잡고 앉아서 결국 다 봤다.
삼십 년 전 애니가 아직도 이렇게 재밌을 줄은
일단 기본 정보부터 정리하고 가자. 이 작품은 1990년 4월 13일부터 1991년 4월 12일까지 약 1년 동안 일본 NHK 종합채널에서 총 39화로 방영됐다. 감독은 안노 히데아키인데, 놀랍게도 이게 그의 첫 TV 감독작이다. 몇 년 뒤에 나올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만든 그 감독이 맞다. 제작사는 가이낙스, 캐릭터 디자인은 사다모토 요시유키가 맡았다. 원작이라고 하긴 좀 그렇고, 쥘 베른의 소설 해저 2만리를 밑그림으로 삼아 새로 지은 해양 모험극이다.
이야기는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시작한다. 비행기 대회에 나온 발명가 소년 장이 서커스단 소녀 나디아를 만나고, 나디아가 가진 블루워터라는 보석을 노리는 세력한테 둘이 쫓기면서 바다로, 결국은 잠수함 노틸러스호까지 흘러가는 구조다. 어릴 때는 그냥 잠수함 나오고 로봇 나오고 신나서 봤는데, 다 커서 보니까 짜임새가 생각보다 훨씬 단단하더라.
한국에서는 MBC가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라는 제목으로 더빙 방영했다. 나는 그 더빙판 세대다. 저녁밥 먹고 소파에 붙어서 봤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한데, 이번에 원판 자막으로 다시 보니 목소리 톤이 낯설어서 처음엔 좀 어색하더라. 그래도 30분쯤 지나니까 금세 적응됐다. 한 화가 딱 30분 분량이라, 밤에 3화씩만 끊어 봐도 진도가 쭉쭉 나갔다. 참고로 이 작품은 안노 감독 혼자 39화를 다 끌고 간 게 아니다. 중반에 일정이 꼬이면서 히구치 신지 감독을 비롯한 다른 스태프가 여러 화를 나눠 맡았고, 그 여파가 뒤에 이야기할 섬 편 작화 문제로 이어진다.

서른 즈음의 안노 히데아키가 지휘봉을 잡았다는 것
다시 보면서 감독 이력을 새삼 찾아봤는데, 이게 또 흥미롭다. 안노 히데아키는 1960년생이다. 나디아 방영이 시작된 1990년에 그는 이제 막 서른이 된 젊은 감독이었다. 그런 나이에 39화짜리 대작 TV 시리즈를 처음으로 지휘했다는 얘기다. 그가 이름을 알린 건 그보다 6년 앞선 1984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였다. 거신병이 무너지며 빛을 토해내는 그 유명한 장면의 원화를 그린 사람이 바로 안노다. 애초에 나디아의 뼈대가 된 해양 모험 기획도 미야자키 하야오가 오래전 구상해 두었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이 작품의 제작 뒷이야기도 만만치 않다. 가이낙스 단독이 아니라 그룹 택, 그리고 한국의 세영동화까지 손을 보탠 합작이었다. 안노 감독은 특유의 완벽주의 때문에 하루 18시간이 넘게 작업에 매달렸다고 전해지고, 그 무리한 일정이 결국 뒤에 이야기할 중반부 붕괴로 되돌아온다. 완성 시점에 가이낙스는 이 작품으로 약 8천만 엔 적자를 봤고, 정작 판권조차 손에 쥐지 못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이 고생을 다 치르고 5년 뒤인 1995년, 안노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으로 사회현상급 성공을 거둔다. 그러니까 나디아는 훗날 에반게리온으로 폭발할 한 감독의 습작이자 예고편 같은 자리에 있는 작품이다. 이 배경을 알고 다시 보니, 화면 곳곳에서 나중에 익숙해질 그 특유의 결이 이미 꿈틀대고 있는 게 보였다.
캐릭터가 하나같이 살아 있다
다시 보면서 제일 감탄한 건 조연들이었다. 주인공 둘만 도드라지는 게 아니라, 곁에 있는 인물들이 다 자기 몫을 한다.
- 나디아: 파란 보석 블루워터의 주인. 서커스 곡예사 출신에 채식주의자다. 고집 세고 툭하면 삐치는데, 그 미숙함이 오히려 열두 살 아이답게 느껴진다.
- 장: 과학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발명가 소년. 뭐든 직접 만들어서 해결하려 든다. 나디아한테 늘 차이면서도 포기를 모른다.
- 그랜디스 일당: 처음엔 보석 노리는 도둑 삼인조로 나오는데, 극이 진행될수록 슬금슬금 아군이 된다. 이 셋이 극의 공기를 얼마나 부드럽게 풀어주는지 모른다.
- 네모 선장: 노틸러스호의 함장. 과묵하고 무게 잡는데, 그 뒤에 숨은 사연이 후반부의 축이 된다.
특히 그랜디스 아줌마랑 부하 둘, 상송과 한손이 나오는 회차는 지금 봐도 웃음이 난다. 악당인데 하는 짓이 어설퍼서 미워할 수가 없다. 어릴 때 나는 이 삼인조가 나올 때마다 볼륨을 키웠던 기억이 있다. 특히 그랜디스가 큰소리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죄다 망쳐 놓는 패턴은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는다. 이번에 다시 보니 이 삼인조가 극 초반의 긴장을 적당히 눌러 주는 완충재였다는 걸 알겠더라. 이들이 없었으면 나디아와 장의 티격태격만으로는 서른아홉 화를 못 버텼을 거다.
그리고 나디아가 데리고 다니는 새끼 사자 킹도 빼놓을 수 없다. 대사 한마디 없는데 표정 연기만으로 웃기고 뭉클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어릴 땐 그냥 귀여운 마스코트로만 봤는데, 다시 보니 킹이 나디아의 감정을 대신 표현해 주는 장치더라. 나디아가 말로 못 하는 순간에 킹의 표정이 대신 말을 한다. 후반부에 나오는 꼬마 마리도 처음엔 그냥 귀여운 애인 줄 알았는데, 극이 갈수록 이 어린애가 감정선의 무게 추 역할을 한다. 마리가 등장하는 회차부터 이야기의 온도가 한 단계 내려앉는데, 그 무게를 어린 캐릭터한테 지운 게 이 작품의 승부수였다고 본다.
나디아는 사실 착하기만 한 아이가 아니다. 이기적이고 못됐고 자주 틀린다. 그런데도 응원하게 된다. 그게 이 작품이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이었다.
노틸러스호와 블루워터, 그 정체가 드러날 때
중반을 넘어가면 이야기 규모가 확 커진다. 그냥 보석 하나 두고 벌이는 추격전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블루워터는 고대 아틀란티스의 유물이었다. 노틸러스호 역시 원래는 아틀란티스가 만든 우주선 엘토리움을 잠수함으로 복원한 물건이라는 설정이 나온다. 적대 세력인 네오 아틀란티스와 그 수장 가고일이 세계를 손에 넣으려는 큰 그림이 서서히 보인다.
이 대목에서 나는 어릴 적 기억이 왜 그렇게 흐릿했는지 알 것 같았다. 초등학생한테는 이 세계관이 너무 컸던 거다. 다 커서 다시 보니 떡밥을 하나씩 회수하는 구성이 꽤 촘촘하다. 안노 감독 특유의 종교적 상징이나 인류 문명에 대한 물음도 곳곳에 깔려 있는데, 이런 결은 훗날 비슷한 무게의 세계관을 다룬 다른 명작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종류의 것이다.

섬 편, 이건 진짜 각오하고 봐야 한다
이 작품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하나 있다. 바로 중반의 섬 편과 아프리카 편이다. 팬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구간인데, 좋은 뜻이 아니다.
방송 일정이 밀리면서 제작진이 급하게 분량을 늘려야 했고, 그 결과 나디아와 장이 무인도에 표류해서 한참을 머무는 에피소드가 이어진다. 문제는 이 구간의 완성도다. 27화와 28화 무렵의 작화 붕괴는 지금 봐도 당황스러울 정도다. 인물 얼굴 비율이 컷마다 달라지고, 배경도 눈에 띄게 성의가 없다. 이야기도 늘어질 대로 늘어진다. 앞서 말한 하루 18시간짜리 강행군이 어디서 탈이 났는지, 이 구간을 보면 화면이 대신 증언해 준다.
세 줄 요약하면 이렇다.
| 구간 | 대략 화수 | 내가 매긴 점수 |
|---|---|---|
| 파리 추격전과 노틸러스호 합류 | 1화~22화 | 9점 |
| 무인도 표류 섬 편 | 23화~34화 | 4점 |
| 최종 결전과 완결 | 35화~39화 | 9점 |
그러니까 앞뒤는 명작인데 중간이 푹 꺼진다. 나는 이번에 다시 보면서 섬 편을 절반쯤 건너뛰고 싶은 유혹을 여러 번 참았다. 그래도 완주를 목표로 잡았으니 꾹 참고 다 봤다. 솔직히 이 구간은 배속으로 봐도 크게 손해는 아니라고 본다.
한 가지 웃픈 일화도 있다. 32화 아프리카 편에서 마을 촌장과 그 아들 하마하마가 현지어랍시고 아무 뜻 없는 엉터리 말을 지껄이는 장면이 있는데, MBC 방영판에서도 그게 그대로 나갔다고 한다. 어릴 땐 그냥 넘어갔는데 이번에 다시 보니까 이게 왜 두고두고 놀림감이 됐는지 알겠더라. 지금 기준으로 보면 아슬아슬한 연출이지만, 그 시절 제작 사정을 생각하면 이런 흠집까지가 이 작품의 역사다.
그럼에도 마지막 5화가 다 되갚는다
섬을 벗어나 최종 결전으로 들어가면 작품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살아난다. 네모 선장의 정체, 가고일과 네오 아틀란티스의 최후, 그리고 나디아가 블루워터의 진짜 계승자로서 감당해야 하는 결말까지. 마지막 몇 화는 밀도가 대단하다. 어릴 때는 그냥 슬프고 멋있다고만 느꼈는데, 이번엔 감정선이 왜 그렇게 흘렀는지 하나하나 짚이더라.
앞의 22화가 쌓아둔 애정이 있어서, 뒤의 5화에서 그렇게 울컥했다. 중간이 처졌어도 이 작품을 명작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 있다.
돌이켜보면 이런 구조는 장편 애니에서 종종 보인다. 완결까지 완성도를 고르게 유지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긴 호흡으로 서사를 끌고 간 다른 대작을 떠올려 봐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나디아의 오르내림은 그 시절 제작 현장의 한계를 정직하게 보여주는 기록 같기도 하다.

서른 몇 살에 다시 마주한 그 저녁
이번 재시청에서 제일 뭉클했던 건 정작 화면 밖이었다. 초등학생 때 나는 저녁밥을 앞에 두고 이 만화를 봤다. 그때는 나디아가 왜 저렇게 심술을 부리는지, 네모 선장이 왜 저렇게 무거운 얼굴을 하는지 하나도 몰랐다. 그냥 잠수함이 멋있고 킹이 귀여웠다. 그런데 그때로부터 삼십 년 넘게 지나 혼자 방에 앉아 다시 보고 있으니, 어른들의 표정이 그제야 읽혔다. 나디아의 미숙함도, 네모의 회한도, 예전엔 안 보이던 것들이 지금은 다 보인다.
엔딩에 대한 해석은 사람마다 갈리는 걸로 안다. 나는 이 작품이 결국 어린 두 사람이 세상의 크기를 처음으로 실감하고, 그 앞에서 무엇을 지킬지 스스로 정하게 되는 성장담이라고 읽었다. 블루워터라는 보석은 그 선택의 무게를 상징하는 장치일 뿐이고, 진짜 주제는 나디아가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있다고 본다. 이런 감상은 어릴 때는 절대 못 했을 것이다. 같은 39화를 봐도 열 살의 나와 지금의 내가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본 셈이다. 좋은 작품은 관객이 나이 먹은 만큼 다시 열어 보인다는 걸, 이번에 새삼 느꼈다.
솔직히 다시 보기 전에는 걱정이 좀 있었다. 어릴 적 좋아했던 걸 다시 꺼내면 실망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기억은 늘 실제보다 반짝반짝하게 미화되기 마련이라, 이번에도 그러면 어쩌나 싶었다. 그런데 나디아는 그 반대였다. 오히려 어릴 땐 못 보고 지나친 것들이 새로 눈에 들어와서, 작품이 예전보다 더 커 보였다. 물론 섬 편의 축 처지는 구간까지 미화되진 않았지만, 그 흠집마저도 이제는 그 시절 제작진이 얼마나 아등바등 만들었는지를 보여주는 흔적으로 읽힌다. 완벽해서 명작이 아니라, 흠이 있는데도 끝내 마음을 붙드니까 명작이다. 이번 정주행이 나한테 남긴 건 그 문장 하나였다.
지금 다시 봐도 괜찮을까
정리하자면 이렇다. 나는 이번 재시청에 후회가 없다. 삼십 년도 더 된 작품인데 캐릭터의 힘이 여전히 살아 있고, 초반 22화의 모험극은 요즘 애니와 붙여놔도 안 밀린다. 다만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섬 편에서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한다. 거기서 멈추는 사람이 많은데, 그러면 뒤의 결말을 못 보니 정말 아깝다.
애니 세계관의 깊이나 상징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작품이 그 계보의 출발점 언저리에 있다는 것도 재밌게 볼 지점이다. 만화 원작의 촘촘한 서사를 좋아한다면 만화 특유의 밀도를 살린 다른 작품 쪽도 같이 챙겨볼 만하다.
다음에 또 볼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옛날 저녁 시간에 나를 붙잡아 뒀던 이유는 이번에 확실히 다시 확인했다. 파란 보석 하나 목에 걸고 바다로 나선 소녀 이야기는, 삼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유효했다.
